[우리집신문=ppp] 광양시가 다가오는 경술국치에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로써 항거한 매천 황현의 생가와 역사공원을 찾는 역사탐방을 제안한다.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조선의 마지막 선비 매천은 2,500여 수의 시를 남긴 문장가이자 47년간의 역사를 꼼꼼히 기록한 역사가다. 1855년 광양 백운산 문덕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매천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시와 문장을 자랑하는 신동이었으며 20대에 이미 만 권의 책을 읽을 만큼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또한 조선의 마지막 문장으로 불리는 이건창, 한문학자 김택영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웅숭깊게 교류했으며 훗날 한말삼재로 일컬어질 만큼 탁월한 문인이었다. 1883년(29세), 매천은 큰 포부를 안고 별시 문과에 응시해 1등으로 합격했으나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2등으로 밀리자 벼슬의 뜻을 접었다. 5년 뒤 부친의 간곡한 권유로 응시한 생원시에서도 1등으로 합격했지만 부패한 관료사회에 개탄하며 대과를 포기하고 낙향해 예리한 통찰력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데 전념했다. 대표적인 기록물인 「매천야록」에는 대원군 집정(1864년)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 위정자의 비리, 일제의 침략상, 민족의 끈질긴 저항 등 47년간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매천야록」은 「오하기문」, 「절명시첩」, 「유묵·자료첩」, 「문방구류」, 「생활유물」 등과 함께 3·1운동 100주년이 되던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일제의 강압적인 을사늑약(1905년) 이후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내내 치욕스러워했던 매천은 한일병합(1910년 8월 29일)에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9월 10일)로써 선비의 지조와 결기를 지켰다. 평생 벼슬에 오르지 않았던 매천이었지만 ‘나는 죽어야 할 의리가 없다.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길러온 지 500년이 됐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는 유서로 지식인의 책무를 일깨웠다. 그가 남긴 절명시에는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하기 어렵구나’ 등 기울어가는 국운에 대한 비통과 지식인의 고뇌가 안타깝게 배어 있다. 당시 경남일보의 주필이었던 장지연은 애도의 글과 함께 절명시 4수를 보도(1910년 10월 11일)한 사유로 일제로부터 약 열흘간 정간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1914년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은 ‘의리로써 나라의 은혜를 영원히 갚으시니/ 한번 죽음은 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시네/ 이승의 끝나지 않은 한 저승에는 남기지 마소서/ 괴로웠던 충성 크게 위로하는 사람 절로 있으리’라는 친필 추모시로 매천을 기렸다. 1855년에 태어나 1910년까지 끈질긴 기록자로 살면서 긴 삶 대신 길이 남는 삶을 선택한 매천 황현은 두 장의 사진과 한 장의 초상화로 남아있다. 특히, 당시 최고 초상화가였던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는 매천이 자결한 이듬해 사진을 모사한 것으로, 매우 뛰어난 사실적 묘사와 예술적 완성을 추구한 초상화의 백미로 꼽힌다. 2006년 12월 문화재청은 대한제국기 초상화의 새로운 면모와 특징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매천의 초상화를 사진 2점과 함께 보물(제1494호)로 일괄 지정했다. 1962년 정부는 고인의 충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광양시는 매천황현생가를 복원하고 역사공원을 조성해 매천의 숭고한 우국 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우산공원에는 매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단아한 초가지붕을 인 매천 황현의 생가에서는 그의 사진, 초상화와 마주할 수 있으며 툇마루에 앉아 마당에 세워진 절명시를 읊조리며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다. 생가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매천역사공원에는 매천 선생의 묘역, 붓과 책을 형상화해 매천의 일대기를 적은 기념비, 영모재, 문병란 시인의 ‘매천송’ 시비 등이 방문자의 발걸음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정구영 관광과장은 “매천 황현이 태어나고 살았던 생가와 그가 묻혀 있는 역사공원을 찾아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의 치욕을 되새기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의 안목을 지닌 꼼꼼한 기록자이자 죽음으로 항거해 영원히 지지 않을 역사의 꽃으로 피어난 매천 황현을 추모하고 잊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우리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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