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신문=ppp] 광주 동구는 지난 7일 4·19혁명 당시 광주 시위를 최초로 논의했던 광주고등학교 학생들의 하숙집터에 기념석을 설치하고 제막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반발해 일어난 4·19혁명은 시민의 항거로 독재정권을 물리친 민주항쟁으로 광주지역에서는 광주고를 중심으로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이날 제막 행사는 임택 동구청장과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김병욱·김선담·이홍길 등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당시 하숙집터(계림동 499번지)가 현재 계림동 그랜드센트럴 아파트가 들어선 관계로 하숙집이 있던 자리인 아파트 103동과 113동 사이 조경 공간에 기념석을 설치했다. 기념석을 설치한 곳은 당시 광주고 학생이던 김충언·이홍길·하성수의 하숙집이 있던 자리로 같은 학교 3학년 김동운·김병욱·김선담·김충언·박상욱·박청명·신강식·이홍길·조병수·지부일·최수천·하성수·홍갑기와 조대부고 3학년 전만길이 함께 비밀리에 모여 광주에서 4·19혁명을 최초로 논의한 뒤 다음 날 광주 4·19혁명의 서막을 연 곳이다. 동구는 옛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고(故) 김재희 기자가 4·19혁명의 경과와 상황을 기록한 ‘청춘의혈(靑春義血)’과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념석을 제작했다. 기념석 제작은 5·18민주화운동 추모탑을 설계한 나상옥 작가가 맡았으며 기념석은 넓이 2.6m, 높이 0.8m 크기로 제작됐다. 기념석에는 장소적 의의에 대한 설명과 함께 민주주의를 꽃피워 올린 4·19혁명의 뜻을 기린 연꽃 조각을 기념석 한쪽에 새겨 넣었다. 임택 동구청장은 “4·19혁명은 학생·시민들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끌어내린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역사로 광주 시위를 주도했던 당시 광주고 학생들의 용기와 의로움을 기리고자 설치하게 됐다”면서 “이곳을 오가는 시민들이 4·19혁명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동구는 사라져 버리고 터만 남은 역사적 장소에 안내판 등을 설치해 뜻을 기리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시민사회운동의 중심이었던 ‘흥학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 선생 집터’ 등에 안내판을 설치했다. <저작권자 ⓒ 우리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