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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렜지 | 기사입력 2014/04/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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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렜지 | 입력 : 2014/04/02 [11:57]
▲ JTBC 월화 드라마 '밀회(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방송캡처     ©뉴스컬처DB

 
(뉴스컬처=김재연 기자)
'밀회'는 한 편의 영화 같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몇 가지 영화들이 설핏 떠오르기도 해. 선재와 혜원의 연탄곡 연주를 보면 박찬욱감독의 영화 '스토커'의 피아노 연주 시퀀스가 생각나. 섹슈얼리티와 피아노를 두고 보면 섹슈얼리티가 문학적 지성으로 치환되었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도 생각나고. 단순 불륜이란 소재만을 생각한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파고들다보면 계속 나오겠지. 불온한 정서가 피아노를 매개로 벌어지는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도 마찬가지고.
 
생각해보면 이 모든 영화들엔 결핍의 반대작용으로 어떤 욕망이 분출되는 플롯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어. 이 말인즉슨, '밀회'에서도 그런 점이 잔뜩 묻어난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것이 선재와 혜원의 불륜이란 비도덕적인 관계가 가질 수밖에 없는, 또 쉽게 공감하지 못하도록 하는 태생적 약점을 메꿔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지난 4월 1일에 방영된 JTBC 월화 드라마 '밀회' 6회에선 오혜원(김희애 분)이 이선재(유아인 분)에 이끌리는 자신을 인정하고 저 자신이 먼저 선재에게 다가가 위로받으려 했어.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과의 마찰이 생기면 생길수록 누적되는 피로에 준형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선재를 찾아가기도 하고 선재가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에 치유받기도 했어. 현재 준형이 둘 사이를 눈치 채고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 JTBC 월화 드라마 '밀회(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방송캡처     ©뉴스컬처DB

 잇따른 선재의 고백과 키스, 포옹에 혜원뿐 아니라 동생들, 설렜지? 언니도 그랬어. 확실히 두 사람의 밀애는 극에서 특출 나게 불온해보이지가 않아. '밀회' 속 인물들, 특히 서한그룹, 서한재단, 서한음대와 관련된 사람들은 도덕적 성찰 따윈 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이들이야. 입학사정관제에 온갖 커넥션이 붙는 것도, 설렁탕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처연하다며 내가 한번 품어줘야겠단 지독히 남성적인 시선이 따라붙는 것도. 현재 선재에 재단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무한 서포트하려는 것 역시 입시 비리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키고 재단 혹은 대학 내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지. 선재와 혜원의 욕망도 이들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어. '나쁨'의 정도가 말이야.

 

선재의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돼. 어머니의 부재란 결핍. 선재의 어머니는 생전에도 선재에게 든든한 조력자라기 보단 자신과 대화하지 않는 선재에 투정을 부리는 귀여운 어머니였지. 그런 어머니의 사고사 후 선재에겐 표면적으로도 어머니는 부재하게 되고 그 자리엔 혜원이 있지. 완전해 보이는 보호자. 극중에서 언급되지 않는 선재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란 존재는 있다가 사라져 그 공백이 여실히 드러나는 자리니, 아버지처럼 등장하는 준형보다 혜원에게 선재가 더 집착하는 건 그런 맥락에서겠지. 혜원을 쟁취하려는 것도. 그래서 선재의 욕망은 어느 인물들 보다 순수해보여. 어미를 따라 가려는 본능적인 움직임 같거든. 또 다른 이들에 비해 일차원적이고. '사랑'에만 몰두하니까.

 

(사진1 삽입)

 

혜원의 일상은 겉으론 완전무결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실과 결핍으로 얼룩져있지. 혜원의 결핍은 자신의 욕망이 메꿔주지 못하는 틈에서 비롯돼. 준형과 한 방에서 지내지만 각자 1인 침대를 쓰고 있고 준형은 혜원을 애정의 대상으로 보기 보단 조력자의 시선으로 늘 뭔가를 요구하지. 혜원에게 던지는 대사의 서술어는 늘 '해줘'나 '해봐'야. 또한 6회에서 혜원이 친구 지수에게 "내 스무 살은 지옥"이었으며 "한참 사랑 할 나이에 머리만 굴렸어. 어떻게든 벗어나야지, 서영우(김혜은 분)한테 묻어서라도 유학가야지, 그런 마음으로 지냈어"라는 걸 보면 서한그룹인 영우네 집안으로 침투해 어떻게든 상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려고 했던 혜원을 알 수 있어. 그렇게 올라 선 상층부의 삶도 만만찮지. 계속해서 기류를 살피고 그에 맞게 전략을 짜야하고 처신해야하지. 하지만 결국 혜원의 얼굴에 날아오는 건 영우의 질타 섞인 마작 패뿐.

 

일상에 지칠수록 혜원은 순수에로 갈망하고 그걸 채워주는 건 선재 뿐. 선재 역시 자신의 빈 곳을 메꿔 주는 건 또래 여자 친구 박다미(경수진 분)가 아닌 모성과 여인의 경계에 서 있는 성숙한 혜원이지. 둘은 서로의 안식처가 돼. 6회에서 영우가 던진 마작 패에 다친 혜원이 향한 곳은 선재의 집 앞이야. 혜원은 선재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한 기사가 필요하다"며 "두 시간 정도 아무 말 않고 자신을 어디든 데려다 달라"했지. 준형의 잔소리에 지친 혜원이 남편에게 친구와 약속 있다며 거짓말하고 선재의 집에 가는 것도, 선재의 포옹에 거부하지 않고 그의 허리에 손을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

 

(사진2 삽입)

 

알아. 그럼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불륜이지. 하지만 '밀회'는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질주하는 선재와 혜원에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곁들이는 반면에 그 외의 것들,이를테면 물질에 대한 갈망, 계급상승에 대한 욕망에 몰두하는 다른 이들은 불순해보이게끔 만들어. 사실 우린 그 반대의 경우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깊었잖아. '먹고사니즘'에 입각한 욕망은 이해돼 왔고, 그럴 수도 있다고 수긍했던 반면 치정들엔 민감하게 반응했지. '밀회'가 불륜을 미화하고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 역시 '먹고사니즘'에 입각한 불순한 욕망들을 미화하고도 있지 않나 싶어. 모두 결핍의 반작용으로 움직이는 것들인데 말이야.

 

물론 '불륜'이 옳다는 건 아냐. 다만 단순히 '밀회'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단편적 이야기로 질타하면 섭섭하단 거지. 언니는 조심스럽게 '밀회'를 두고 도덕적 판단은 잠시 내려놓자고 말하고 싶어. '밀회'는 어느 쪽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를 보여주려는 건 아닌 것 같아. 악하다고 여겼던 불륜과 같은 욕망들이 마냥 불경해 보이지 않고, 이해됐던 물질적, 계급적 욕망들이 마냥 당연해보이지 않는 '밀회', 사회의 단면을 조밀하게 그리는 '밀회'가 구축해놓은 세계를 보며 우리네 사회의 이면을 캐내어 보자는 거지. 일차원적인 교훈을 얻고 싶다면 교훈서를 읽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니까 언니 말은, 두 사람의 애정에 설레는 동생들! 너무 죄책감 갖지 말자고. 혜원이 선재 집에 찾아오자 선재가 혜원을 위해 방바닥을 닦는 장면,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혜원의 말에 정색하며 말을 끊는 선재, 혜원만 있으면 늘 부산스런 선재의 움직임과 선재와 함께 할수록 짙어지는 혜원의 숨소리를 어떻게 놓칠 수가 있겠어. 불륜을 하는 그들에 둔감하게 굴지는 않되 동시에 마음도 열어놓고 보자고!

 

 

[방송정보]

프로그램명: 드라마 '밀회'

편성: JTBC 월, 화 오후 9시 45분~

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

출연: 김희애, 유아인, 박혁권 외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고독청소부’
작/연출: 이진경
공연기간: 2014년 3월 26일~4월 6일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출연진: 김종철, 강애심, 견민성, 김성현, 김민서, 이지현, 홍의준
관람료: 전석 2만원
관람연령: 17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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