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신문=ppp] 오늘날, 우리가 서울에서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많은 문화공간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런 물음들 속에서 시작한 서울역사강좌 '문화공간, 서울역사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됐다. 근현대 서울의 문화공간 중 서울시민에게 의미가 큰 15개의 공간을 주제로 선정했다. 현대적 의미의 ‘문화공간’은 누구나 동등하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즉, 문화공간의 확대는 이전의 신분제 사회에서 벗어난 ‘근대 시민’으로의 계몽을 의미한다. 우리 역사 속 문화공간은 일제강점기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는데, 일제 식민권력은 문화공간을 ‘근대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했고 이와 반대로 조선인들은 집회의 시위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문화공간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공간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20년대 종로를 중심으로 발전한 ‘다방’은 일제강점기 암흑의 시대에 유명 영화배우, 감독, 미술가, 시인들이 모여 사상과 철학을 공유하고 식민지 시대의 우울을 노래했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대표적인 다방으로 종로의 ‘멕시코’, 소공로의 ‘낙랑파라’를 비롯해 ‘비너스’ ‘플라타나’, ‘제비’ 등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은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희대’였다. 연희단체명에 따라 협률사로 불리기도 했으며 판소리와 가무가 펼쳐지는 상설극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협률사가 문을 닫은 뒤에 그 명성은 원각사로 이어졌고, 대표적인 극으로 신연극 '은세계'가 있었다. 이후 광무대·단성사·연흥사·장안사 등 여러 민간극장이 세워지며 문화생활을 향한 서울시민의 욕구가 ‘극장’으로 모이게 됐다. 많은 극장 중에서도 활동사진, 즉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대세를 이루면서 오늘날의 영화 문화가 정착됐다. 서울시민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 극장 ‘단성사’는 '겨울여자', '장군의 아들', '서편제'등을 개봉하여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경영난이 지속되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박물관은 어떨까? 일제강점기 경성에도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박물관은 1909년 창경궁에 설립된 제실박물관이다. 제실박물관은 한일강제합병이후 ‘이왕가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경복궁에는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조선총독부미술관’이 만들어졌는데, 이들 전시공간은 식민권력에 의해 조선왕조의 궁궐에 지어져 한반도의 역사를 전시했던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대표적인 민간박물관으로는 간송 전형필의 '보화각'이 있었다. 보화각은 한국의 귀중한 문화재를 수집, 보존한 대표적 소장가인 전형필의 소장품을 전시한 공간으로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이 되어, 소중하게 지켜낸 우리의 문화재를 오늘날에도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도서관은 1923년 완공된 조선총독부도서관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조선총독부도서관을 비롯해 철도국도서관, 경성부립도서관 등 여러 공공도서관의 직원들이 모여 ‘경성도서관연구회’를 결성하여 독서문화 보급에 힘쓰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간섭 하에 조선총독부도서관이 기관지 '문헌보국'을 창간하면서, 도서관은 사상통제의 수단이자 조선총독부의 홍보기관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 도서관이 지식의 보고이자, 사상통제의 장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 최초의 방송국은 1927년에 생긴 '경성방송국'이다. 방송에는 여러 조선인 아나운서가 등장했고, 이때 활동한 여성 아나운서는 당대의 신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미지화 됐다. 라디오 드라마, 소설, 만담 등 다양한 ‘들을거리’가 발전하면서 기생과 광대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중연예인이 됐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라디오방송은 일제의 대변기관이 되었고, 정치적 비판과 언론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통제의 장’이 됐다. 광복 이후 경성방송국은 지금의 공영방송 KBS의 모체가 된 ‘서울중앙방송국’이 되었다. 당시 경성방송국의 건물은 철거되어 지금은 기념비만이 남아있다. 고급 쇼핑몰인 동시에 문화공간의 역할도 수행하는 오늘날의 백화점은 과거의 ‘대형 소매점’에서 출발했다. 일제강점기 경성에 자리 잡은 5대 백화점(미쓰코시, 미나카이, 히라다, 조지야, 화신백화점)은 쇼핑과 오락, 휴식이 어우러진 근대적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근대인의 ‘소비훈련’을 주도했으며, ‘상품의 시대’를 열었던 공간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어린이 놀이공간인 ‘어린이대공원’은 원래 순종비인 순명효황후 민씨의 능이 있던 ‘유강원’으로 불렸던 공간이다. 1928년 이래 경성골프구락부의 골프장으로 이용된 이래 광복 이후까지 상류층의 골프장으로 이용됐다. 이후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어린이 대공원’으로 개장하여 오늘날까지도 어린이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국가 단위의 메가 이벤트가 추진되면서 문화시설이 확충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올림픽 공원이 있다. 1970년, 아시안게임 유치에 실패하면서 사회 전체에 문화공간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이에 올림픽 유치를 위해 ‘잠실지구’라는 신시가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88서울올림픽, 86아시안게임의 개최권을 획득하게 된 이후에는 범국가적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국가 주도의 올림픽타운 개발과 더불어 진행되었던 강남 개발은 올림픽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한 이후 ‘올림픽의 유산’으로 남은 올림픽공원은 여가문화시설, 역사공간(한성백제), 자연생태공원이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문화공간으로서 서울시민의 여가생활에 큰 축을 담당하게 됐다. 이 밖에도 '문화공간, 서울역사이야기'에서는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63빌딩의 이야기, 부민관부터 시공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에 이르는 국공립 문화예술시설의 이야기, 그리고 쓰레기장 난지도가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 어떻게 생태문화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는지 그 변천사를 다룬다. 각 장에는 여러 이미지 자료를 활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도와 흥미를 높였다. 이번에 발간된 도서는 2022년 하반기 서울역사강좌 교재로 사용 예정이며 8월 25일부터는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에서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다. 구매를 원하는 시민은 서울책방 및 온라인샵에서 1만원에 구매 가능하다. 서울시내 각 도서관에는 무상배포될 예정이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문화활동과 문화공간은 언제나 우리의 생활 가까이에 존재했던 공간이다”며 “이번 강의를 통해 시민 여러분께서 서울의 다양한 문화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우리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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